엮인글: 4.3의 학살 책임과 인식의 전환에 대하여 (MAUS.K님)
1. 최근 4.3사건과 관련된 여러 글이 이글루를 장식하고 있군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타 주제에 비해 흙탕물 튀는 키배로 발전하지도 않는 것 같고.
요새 도저히 길게 포스팅할 수는 없는 여건이긴 하지만, 4.3사건은 제게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기 때문에 짧게 몇 마디만 하려고 합니다.
1-1.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고향도 고향인데다가 딱히 4.3에 대해 깊게 파들어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이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거나 불편부당한 글이 되긴 어려울 겁니다. 그저 한 개인의 의견으로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한 분이라도 63년 전 요맘때 물 건너 섬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찾아보면 더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겠지만, 일단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http://jeju43.go.kr/ )에서 괜찮은 자료를 많이 구할 수 있을 듯 하군요.
2. 최근 이글루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양 편 모두 ‘제주에서 시민들이 정부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 위원회)에서 발행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이하 4.3 보고서)의 결론에 의하면, 4.3 사건의 추정 희생자는 2,5000명~3,0000명, 그리고 신고된 1,4028명의 희생자들 중 78.1%(1,0955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러프하게 계산해 보자면 최대2,4000명의 시민이 군경에 의해 살해당한 거죠.
아마도 매우 보수적으로 계산하셨을 거라 추정되는, 트랙백한 MAUS.K님의 글에서도 7000 명 가량이 폭동사태와 무관하게 희생되셨음을 인정하시고 계시고요.
즉, 1947년 3월 1일~1954년 9월 21일까지 대략 7년 6개월 동안 최저 7000~최대 2,4000명 가량의 시민이 군경에게 살해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봐도 되겠죠.
3. 양편의 주장이 갈라지는 지점은, 저 시민 살해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점이겠죠.
트랙백한 MAUS.K님의 핵심적인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4. 여기서 저와 의견의 차이가 생기는 것 같군요. 사실 제 의견이라는 건 뭐 별 거 없습니다.
“아무리 국가 상황이 막장스러워도 그렇지, 한 줌도 안되는 무장세력 잡겠다고 몇 천, 몇 만 명씩 쓸어버리는 게 나라냐?”
무고한 희생자 7000명은 물론이요, MAUS.K님께서 희생자들 중 무장대 측 가담자로 잡으신 7000명의 희생자들의 죄질이 모두 죽어 마땅할 정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5. 딱히 백과사전의 정의를 찾아볼 필요도 없이,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시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의명분으로도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국가’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상식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시군요.
제 능력이 모자라 다른 분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듯 싶고, 혹 4.3 사건에 대해 아직 알아가는 단계이신 분들이 계시다면 어느 주장이 옳은지 선택하시겠죠.
6. 4.3사건은 미군정 하에서 벌어진 일이긴 했습니다만 사태 전개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상 그 어떤 행정부보다도 많은 시민들을 살해한 정권입니다. 거창양민학살 사건,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물론 ‘건국’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긴 했죠.
그런데, 보통 ‘공포를 통해 혁명을 지키려 한’ 로베스피에르나, 말 그대로 국가와 국민의 존망의 위기에 맞서 227호 명령(‘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을 공포한 스탈린의 행각을 우리는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대프랑스 동맹군을 쳐부순 프랑스 시민, 말 그대로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며 동에서 서로 유럽을 횡단한 러시아 인민의 노력에 찬탄을 보내죠.

7. 이영훈 교수의 식근론에 대해 대체적으로 찬성합니다. 기존 역사학계의 식민지 시대에 대한 서술이 과장됐으며, 이유야 어쨌건 식민지 시대에 각종 제도가 도입됐다는 데에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런데, 해방 후 이승만과 그 정권에 대한 이영훈 교수와 그를 위시한 뉴라이트들의 평가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단 말이죠.
이승만이 북한, 그리고 한국 내의 기타 정치세력에 맞서 정권을 쟁취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해냈기 때문에 이런저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논리인데.
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미국에서 들어온 거고, 그게 한국에 정착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미국이 38선 이남을 차지했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그런 외부 여건을 재빨리 읽은 노회한 정치인이었을 뿐이고.
왜 저들이 그렇게 ‘국부’ 타령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민’들에게 쫓겨난 정치인을 ‘국부’로 모신다는 것도 우스워 보이고, 미국 말고 Founding Fathers를 따로 기억하는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딱히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저들의 주장에 따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한국에 자리잡게 만든 이를 ‘국부’로 모셔야 한다면 가장 어울릴 사람은 해리 트루먼이 아닐까 싶군요. 어쨌건 한반도의 남쪽 절반을 공산주의에 맞서 지켜냈으니.


윗집 깡패, 옆집 개떼들에 맞서 한국을 지켜낸 월튼 워커 8군 사령관은 한국의 ‘건국의 형제’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전 초기의 수많은 위기상황을 타개해냈으며, 중국군 개입으로 인한 위기상황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사한, 우리로서는 잊어선 안되는 인물이죠.

이러다가 건국의 삼촌, 건국의 숙모, 건국의 매형, 건국의 처삼촌까지 거론할 수 있을 것 같군요.
48년 이후 이승만과 그 정부가 막장이었다는 사실은 뭘로 보나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뉴라이트들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습니다.
8. 무리하게 현대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1860년부터 1960년까지 100년 간, 한국이 역사적 발전의 흐름을 못 타고 뒤떨어진 것도 사실이고, 그 50년 뒤 나름 먹고 사는 나라가 된 것도 사실이죠. 근데, 그 책임과 공로를 꼭 한 명, 한 정파를 콕 집어 까고 추어올릴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이 150년 간 한국은 세계사의 흐름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국사’라는 단일한 범주에서 이해하긴 너무 복잡한 행로를 보여왔는데, 그러한 변화의 책임을 한 명에게 지운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생각난 건데, 이승만, 박정희, 전대갈은 각각 ‘1948년부터 1989년까지의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이승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허울뿐인 자본주의-민주주의를 내세웠던 막장 컨트리였던 한국을 대표하는 더없이 적절한 인물 같군요.
9. 뭐, 여기 오시는 분들은 제가 좌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한국 현대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게 곧바로 한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뭐, 한국은 이미 정통성을 입증했죠.
오히려, 막장 정치인을 무리하게 국부로 추켜올리며 억지로 긍정적인 모습을 찾으려 하는 건, 역설적으로 아직 한국의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네요. 아직도 얼굴에 억지로 분을 칠해야 봐줄만 할 정도로 한국이 모자란 나라인가요?
저는 역사나 국사 전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7번 이후로는 패스하셔도 될 듯 합니다.
짧게 쓰고 끝내려 했던 글이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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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저는 이글루스 밖에서만 수꼴 취급받는데(...) 인터넷용 사상검증 검사 tool ™ 이라도 만들어서 정치적 성향 밝혀야 할까요?
정말 국부로 불릴수 있다면 김구 주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념적 문제때문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부 칭호를 받아야한다면 저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더군요. 최소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기점으로 볼 사항은 아닌 국부문제이니까요. 지나치게 중국의 쑨원의 국부인식 사상을 갖고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이 국부라는 개념은요. 나라 건국에 힘쓴 위인들로 치자면 이승만 전 대통령만큼 한 사람들 전부 국부로 할수 있는문제임에도 말입니다.
해방전후사는 앞으로도 더 연구가 진행되야 될 것 같습니다. 김구의 전후 행적도 의심스럽거나 꺼림칙한 부분이 맣ㄴ은 것 같더군요.
여하튼 1) 전쟁이 벌어지자 수도를 지킨다고 방송해놓고 남행열차 타고 ㅌㅌㅌ했으며 2) 발췌개헌 및 사사오입 개헌으로 헌정 질서를 두 번이나 무력화시켰고 3) 보도연맹,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수 만~수 십만의 자국민을 학살하고 4) 권력 유지를 위해 각종 법살을 저지르는가 하면 5) 부통령 당선을 위해 별별 부정선거를 저지르다 '시민'들에게 쫓겨난 자를 '국부'라고 부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2011/04/05 20:2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사실 좋은 글 찾아 읽기도 바쁜데 저런 글까지 읽기는 시간이... ㅡㅜ
독소전 당시에 스키자국 가지고 마을을 지워버리고 파르티잔 잡는다고 2달 사이에 한 사단이 지역민 만 명을 쏴죽이는 것도 다 정당화 되겠군요.
나치독일하고 빨치산을 한국정부하고 좌익분자로 등치시키는 개념이면 비유자체가 틀렸지요.
피아식별이 안된다고 점령지의 민간인도 아니고 자국민을 학살한게 더 약하다고 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런걸 끝까지 옹호해 주는건 솔직히 알 카에다 놈들의 무차별 자살 테러도 다 자기들의 표현이다 라고 이해해주는 거와 똑같은 거라고 봅니다.
쉽게 내뱉는 인권과 평화로 제발 그 시대를 제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최소한 정황과 나은 대안이라도 제시하던가요. 알카에다가 나쁘던 나치독일이 나쁘던 댁들이 뭔 상관인가요? 강건너 불구경일 뿐이거늘..님들이 갑자기 난입해서 종교재판에 테러질을 당하길 했습니까 아니면 나치독일 천하에서 게쉬타포한테 시달려 보길 했습니까?
이런 논리입니까?
그저 극단적인 사례와 등치시켜서 도덕적인 비판하는것은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그때 덜 인명을 해치고 반란으로 인한 혼란을 막을 방도의 개념으로서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개념으로 비판하면 타당하지만 님들처럼 알카에다도 나치독일도 한국정부도
사람죽였어..그래서 다 잘못이야 이러면 아무 쓰잘데기 없다고요....누가 나치독일,알카에다 나쁜지 모르나요?
더 나은상황에 대한 근거도 없으면서 반란을 분쇄하고 혼란을 정리하였어도 인권침해다 하면서 날뛰면 알게 뭐냐고요....
역사의 역자라도 알면서 좀 설치시면 몰라, 아예 세계 역사를 새로 쓰시지 그래요?
그 잘난 서구들은 다 벌레처럼 사람 죽여놓은 거에 대해 자기비판과 재구성을 일삼고 있지 말입니다. 쪽바리들도아니고 인간성과 체계가 그 모냥이던 시절이니까 그냥 평가를 미뤄되도 된다는 건가?
그리고 4.3 이 그 '극단적인 사례' 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냥인데 그 시대에 살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평화로운 시대에 살면서 컴퓨터 앞에서 자판 두드리면서 어떻게 합리적으로 그런 결론을 낼 수가 있는지 궁금하지 말입니다 ㅋ남들은 다 바보고 님만 현자인가요?
다만 정권초기에 피아구분조차-친일세력, 사회주의세력, 친북 및 친소세력 등등- 안되던 시점에서의 과잉진압이 지금의 기준으로 '학살'로 명명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생각되네요.
아마 그들도 가치판단에 혼란이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승만은 반공을 외쳤지만 정작 초기 장성들의 대부분은 중국공산당 출신으로 독립군 활동을 하다 내려온 이들이 상당수였으니까요.
그런데 이곳 이글루스에선 당시의 수많은 우파계열과 그보다 더 많은 좌파계열을 뭉뚱그려서
작금의 자신들의 세력 테두리에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죠.
4.3만 하더라도 초반 무장대-시민 분리 진압을 추진했던 김익렬 중령이 밀려나는 등 정부는 딱히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질 않았죠. 몇 년 뒤 각종 양민학살사건 및 보도연맹, 국민방위군 사건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어라. 왜 이리 이박사님과 비슷해보이죠?
센징 드립에 독타리의 조합이라니 흠좀무
역대 대통령중 가장 극렬한 반일주의자였을 이승만이 저걸 보면 참 재미있겠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자꾸 이걸 좌우드립, 친북드립으로 끌고가려는 패악질역시 심히 혐오스럽다고 생각함.
또 지금도 4.3사건에 민주화 드립까지 치면서 죽은사람을 욕보이고 있는 누구를 보면
진짜 이 논쟁을 자신의 의견을 단순히 드려내려는게 아니라 상대방과 키배만을 벌이려고 작심한 듯 해보여서 마음이 울적해진다.
2011/04/05 23:4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하지만 어쨌건 4.3 및 각종 양민학살은 피할 수 있었고, 주권국가로서 피해야만 했던 비극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캄보디아에 비해 덜했다 뿐이지, 우리의 현대사도 충분히 비극적이죠.
솔직히 말하면 대한민국 남부가 김씨조선 치하로 떨어지지 않은건 이승만 박사님이 아니라 트루먼 대통령 때문일겁니다
한국전쟁 발발 전의 미흡한 전쟁준비(와 대책없는 호전적 발언), 개전 후 실책의 연발이었던 전쟁수행,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양민학살과 아군살해.
최소한 1950~1953년까지 한국이 공산화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미국의 덕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53년부터 60년까지 한국을 굴러가게 만든 재원 역시 미국의 원조였음을 감안해보면, 일제강점기 시기라면 몰라도 해방 후 이승만이 대체 한국에 도움이 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낸 공로는 각종 양민학살과 전쟁수행시의 삽질을 덮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 같네요. 거기에 부정부패와 정치탄압 등까지 거론하면 뭐.. 할 말이 없군요.
정말 감사해야 될 대상-스스로의 희생을 통해 공산화를 저지해낸-은 UN군과, 미국과, 우리의 무명용사들입니다.
2.테트공세 당시 사이공에 NVA가 쳐들어온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서울에 입성한 북한군에 대하면 얼마 안된다는건 상식 수준이겠죠....라지만 이미 NVA가 남베트남군으로 위장했다던가 사이공까지 호치민 루트가 연결되었다던가 하는건 정말 남베트남군의 상식 밖의 병신성을 보여주는지라(...)
3.민간인과 게릴라를 구분하기 어려운 특수상황이라고 해서 일부러 민간인 마을에 소탕작전을 시작해서 빨갱이 협력자라고 '생각되면' 쏴죽이는게 용인될수는 없습니다.
2. ."3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시민 살해는 건국 초 제대로 기반을 잡지 못했던 한국의 현실 하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맞는 말이긴 하죠. 요즘도 무장세력과 무고한 시민을 구분 못하거나, 혹은 구분할 수 있더라도 시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밖에 없는데, 저 때는 우리나라가 형편 없었던 시기이니.... 이런 상황을 고려해 무작정 까면 않되겠지만, 주인장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당화가 될 수는 없죠.
3.이박사는 잘한것도 있지만(위에 언급되었으니 생략) 너무 과가 커서 공이 묻히는 전형적인 케이스.
1) 북한도 당분간 흡수통일을 노릴 수 없을 만큼 막장이었다.
2) 북한이 군사적 흡수통일을 노릴 수 없도록 미국이 군사적으로 안전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3)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한국 내부의 혼란을 조성할 수가 없었다. (전 국민들이 북한을 원수로 여기니..)
4)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이승만 독재정부가 국민에게 철권을 휘두르며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있었다. (이정재, 김창룡, 조봉암 법살 등 사례도 많죠.)
결국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의 안전 보장과 경제적 지원이라고 봅니다. 사실 50년대 말 한국의 경제상황이야 겨우 굶어죽는 걸 면할 정도였으니.. 전후 7년 역시 이승만이 뭔가의 업적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경공업 키운 목적이 대한민국을 살리고는 개뿔, 꽤 불순한 의도로 만들었었고 꽤 많이 횡령을 했으니 결국 잘한 업적이라고 보기도 뭔가 문제가 있군요
국부 개념 자체가 좀(이걸 써야하나요?:0 )............저어되는 게 있는지라 초대대통령이라고해서 국부여야 하는지는.................; 빅트레인님 말씀대로 그럼 국부다운 일을 뭘했나 하면 전쟁때행태부터도 좀...(...)
여튼 그렇습니다.
제주사건에 대해서는 이승만정부가 참잘했어효 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일련의 논의에서 발견하기 어려운데말이에요. 불가피성이란것도 실은, 그때참병진이어서일을처리해도좀곱게못하고그지경으로만들었지<-에 관한, 그런 불가피성인것 아닌지요.
공산당 잡으려면 별수없다 가 아니라(그건 그 당시 정부의 생각이었겠죠maybe...)
그 시대의 민주&인권개념미약+정부의대처능력미비/혹은 비신중함+시국불안..에 따른 부작용이 불가피했다, 는 그런 이야기라고 보이는데 말이에요.
솔직히 무애자님의 포스팅 자체는 꽤나 러프합니다. 포커싱한 부분말고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안쓴다는 인상마저 받을 수도 있다고 보여요.
그치만 논쟁이 오가는 흐름에서 무얼 애초에 지적하고자 했는지 파악해보고나면, 뭐 무애자조커무명씨등...쪽의 시선에 대해 반론격으로 그래서그때잘했다는거냐/희생을정당화하지마라 류의 비판은 뭔가, 핀트가 안 맞는다고 보이거든요.
'제주 4.3은 1948년 4월 3일 평화의 섬 제주도에 군경과 서청이 몰려가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이 아닙니다.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1948년 4월 3일 자칭 인민해방군 혹은 인민유격대가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4.3사건 정의를 자기가 새로 만들어낼 기세.
1) 시대가 그랬고, 희생이야 어쨌건 지금 한국이 살아남았고 체제경쟁에서 승리했으니 그 정도의 흠은 묻을 수 있다. (+ 생존과 승리의 공적은 당시 정부의 수장인 이승만에게 있다.)
2) 기본적인 국가의 역할로 미뤄볼 때,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이유로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북조선 정통론을 주장하는 좌빨들을 제외한다면, 4.3이나 기타 1공화국의 정통성을 둘러싼 논란은 저 정도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그 상태에서는 다 막장이니 정당화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런 이해 위에서 쓸데없는 "비하"가 아니라 정말 생산적인 "비판"이 가능하게 되겠죠.
근데 이승만을 국부로 추대하자는 뉴라이트나, 4.3의 민간인 희생의 어쩔 수 없었음을 주장하는 일부 논자들은 시대의 한계를 이유로 그 사건까지 정당화함은 물론, 결과적인 한국의 번영과 부흥의 공로를 이승만에게 돌리려 하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3공, 4공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1공화국은 의문의 여지없는 실패한 정권이라고 보거든요. 1공화국 당시에 대한민국 부흥의 여지가 놓여진 게 있었다면, 아마도 그건 정권의 공로가 아니라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2.그도중에 군경 혹은 서청의 진압대응방식이 옳았던건가?(적절성),모든책임이 군경 서청의책임인가(책임론)이 벌어졌던것이구요.
-민간인이 이적불법무장단체에 무장을 직간접으로 도왓다면...뭐 현장에서 군경이를 봣다면 사살아닌가요.간첩도 ... 무장간첩을 민간인이 돕는상황자체가;;;국가내란행위를 돕는게...전모씨나 노모씨를 봐도;;;
3. 대구사건,4.3사건,여순반란사건으로 이어지는 숙군작업은 결국 현재의 우리나라를 있게한토대가된건 사실입니다.
4.이승만이 부정부패로 국민방위군이나,모대학사건이나,사사오입이나,부정선거나...뻘짓을 저지른것도 맞습니다. 지나친 4.3사건토벌에일어난 민간인 피해도 마찬가지구요.까야죠
5.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미국에 삥을 잘근잘근뜯어대던 이승만 정부 정책이 전부 병신짓은 아닙니다.
6건국의 아버지라고뭐 국민이니 그런것붙이는것 자체도 뭐 웃기는일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지관적으로만 봐야하는것도 의문이네요.
4.3이 '민중항쟁'인가, '사태'인가, '학살'인가의 여부는 각기 사건을 바라보는 당사자들의 시각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중항쟁'은 아니라 보고 김달삼 등 공산주의자들을 옹호하려 하는 좌빨들의 책동에도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미군정-이승만 시기 군, 경찰 및 민간폭력단체를 이용한 과도한 진압과 그에 부가해 이뤄진 '민간인 학살'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옹호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는 한국전쟁 초기 퇴각 과정에서 후방의 안정을 명분으로 행해진 각종 학살 사건들이 옹호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봅니다. 사실 상황은 그 당시가 더 급박했고.
3, 4, 5: 전체적인 공과를 따져 볼 때, 이승만 정부는 과가 공을 훌쩍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제 시각이 편향돼 있는지 모르겠는데 공이과팔 정도면 적당한 평가인 것 같긴 하네요. 특히나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유엔군의 공헌이나 전쟁 초기 실패 연속이었던 전쟁지도를 감안해 보면 말이죠.
2011/04/10 14:4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그러나 이것에 대해 질문하고싶군요
이승만이 없었다면
누군가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으로 하는나라를 건국해냈겠습니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개화된 국민들 스스로 장기간의 혁명을 통해 쟁취해 낸 것에 가깝고,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공을 가능케 한 자본주의는 한국이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기 때문에 유지-도입될 수 있었고, 기실 운영방식의 상당부분은 공산권(이라기보단 일본)의 영향 하에 있었죠.
대한민국이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고 그 과실을 이승만에게 돌려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4.19당시 국민들의 타도대상은 이기붕이였지 이승만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소련 영향하의 한반도 북부는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를 거쳐 1인지배 체제로 퇴행해버렸고, 미국 영향하의 한반도 남부는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를 거쳐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을 이뤄냈죠.
따라서 한국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했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게 아니라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치적 발전은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바라봐야겠죠. 미국의 영향권 하에서도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한 제3세계 국가들이 많으니.. 하지만 경제발전을 민주주의 획득의 주요 요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 도입을 그 원인 중 하나로 인정할 수 있겠죠.
그리고, 4월 28일 이기붕이 이강석의 손에 끔살당한 뒤인 5월 29일 이승만이 하와이로 망명했는데, 그가 시민들의 비판 대상이 아니었다면 굳이 하와이로 도망갈 이유는 없었을 듯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만 중요하게 여겼지 한반도에서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즉,미국이 손도 못대는사이 충분히 공산화될수있었습니다
그것을 막아낸게 이승만의 공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말년에 인의장막에 가로막혀 3.15부정선거 사실자체를 몰랐으며
이것을 알게되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것입니다
실제 전쟁이 일어나자 마자 미국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당시 유일한 지원 가능 전력이었던 24사단을 축차투입하는 무리수(와 자만이 반반씩 섞인)를 두면서까지 개전 초 한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전력을 다했죠. 바다와 하늘은 애초 유엔군의 지배 하에 있었고.
개전 초 한국군은 춘천 6사단의 선전을 제외하면 파주-문산, 연천-의정부, 포천-의정부 축선이 동시에 무너지며 3일만에 서울을 실함했고, 실함 과정에서 섣부른 한강철교 폭파로 중장비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부대건재가 무너진 채로 남쪽으로 남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죠. (제 기억에 일주일인가 만에 절반 이상의 병력을 상실한 걸로 기억합니다.)
결국 미국, 유엔군의 지원이 있고 나서야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 http://www.imhc.mil.kr/imhcroot/data/korea.jsp )
한국전쟁 개전 초 북한군의 저지에 이승만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건 뭐 전무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자리보전하는 영감도 아니고, 일국의 대통령이 대규모 부정선거 시도를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보고, 설령 몰랐다는 게 사실이라 쳐도 그걸로 면피할 수 있나 모르겠군요. 그리고 혹 저 사실을 입증하는 사료를 제가 알 수 있을지요?
그렇게 이승만 체제나 이승만이 이룩한 국가가 싫다면, 왜 그런 체제에서 살면서 혜택을 보시오? 당신이 누리는 인터넷 혜택, 교육 혜택,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각종 혜택이란게 실은 그렇게 형성된 나라에서 나오는 혜택 아니던가?
성삼문선생이 지적했듯, 백이와 숙제가 캐먹는 나물도 실은 주나라 왕의 땅에서 나는 생산물이 아니던가?
장면하고 박정희가 정치적인 부담이 될까봐 이승만 귀국 막은 것은 아시는지???
설마 해방정국을 현재와 같은 시민의식을 갖춘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무장을 한 공산당세력이 해방직후 혼란기를 틈타서 사회 각지에서 암약하고 있던 현실 + 서북청년단, 족청 등의 만만찮은 화력을 갖춘 임정 세력이 건재하다 는 것은 전혀 무시하는군...
막장정권 실드치려고 양민학살까지 변호하려는 데에는 할 말이 없네요. 앞으로 수꼴들하고는 거리를 둬야겠습니다.
앞으로 수꼴들하고는 거리를 둬야겠습니다? 남로당이나 북괴의 잘못은 전혀 까지 못하는 감성주의, 낭만주의 애국좀비 꼬꼬마를 우익이라 생각해본적도 없고, 그런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는데요? 이거 왜이러시죠?
그렇게 대한민국체제가 불만이면 이민가시죠? 왜 그런 체제, 4.3폭동을 진압하고 이룩한 그런 나라에서 혜택을 누리고 살죠? 왜 그런 핏물로 이룩한 국가에서 살려고 하십니까?
1) 양반 상놈 따지던 나라에서도 "국민을 지키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졌고.
2) 전 언제 당신보고 친해지자고 나선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 안 오시면 되겠네요.
그리고 리플 안 읽어보신 것 같은데, 예전글이나 리플에서 충분히 좌빨들 까고 있습니다만?
3) 수꼴들의 종특인지, 여기에 답글 단 수꼴들만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자랑스러워하고 지키고 싶어하는 한국은 최악의 여건을 딛고 이 정도까지 발전을 이뤄낸 국가와 사회 그 자체이지, 양민학살에 부정부패를 밥먹듯이 저지른 막장정권 따위를 자랑스러워할 생각은 없습니다.
허참... 양민, 그 양민이란 이름으로 슬그머니 다 묻어가려고 하네???
미니멈 1,4000~맥시멈 3,0000이 쓸렸는데 그럼 그 사람들이 다 좌빨이었수?
계속 국가가 나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먹으면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게 너같은 부류들이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한심스러운 인간...
이건 뭐 할 말이..
무조건 양민이란 이름으로 다 덮어버리려 하지. 양민이라는 이름을 참 좋아하는 위인인데, 이것 하나만 알아두거라.
과연 공장의 노동자, 시장의 장사꾼 상인들이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일까? 눈치 보고, 요령 피우고 거짓말 하고 남 뒤통수 까는게 바로 그 서민, 노동자, 장사꾼 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단순히 약자 이면 무조건 선량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는군... 한번이라도 공장에 취직해보거나 시장에서 일해보렴. 과연 서민, 노동자, 장사꾼, 상인... 약자 라는 사람들이 무조건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을지 말이다.
겪어 보라니까. 겪어 보라고...
어디서 아버지가 주는 용돈, 어머니가 주는 따뜻한 밥이나 먹고 편안하게 사니까, 이세상이 뭐 정의롭고 이상적인 곳이라도 되는줄 착각하는구만... 온갖 음모와 술수와 잔머리와 눈치, 거짓말이 난무한다는걸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려는건지???
아쉽게도 대학 졸업한 이후로 내가 벌어 내가 먹고 살고 있고, 어머니가 주는 밥은 커녕 고향에 내려가 본 게 1년 전이다 ㅄ아.
2. 이 ㅄ은 선량하지 않은 시민은 그럼 학살해도 된다는건가?
내가 이글루스에서 보던 수꼴들이 이런 넘들이었다니, 소름이 끼치네..
남로당 빨치산들을 잡아내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잡아낸 것은 사실이지. 헌데, 그 모든 사람들을 양민 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려고 하는것은 반대일세.
과연 4.3 사태때 빨갱이나 그들에게 세뇌된 사람, 동조한 사람들,
혹은 가족이나 친지 중에 그런데 세뇌당하거나 동조된 사람이 있어서 끝까지 입다물다가 맞아죽은 사람들도 과연 양민이라 할수 있을지 말이다.
2
그렇게 형성된 대한민국체제가 불만이면 대한민국을 떠나시던가...
왜 그런 체제, 그렇게 형성된 부조리한 사회의 혜택을 보느냐? 네가 지금 누리는 인터넷이나 각종 교육, 복지 혜택은 어느 나라에서 주는 거냐?
받을건 다 받아내면서 욕하는건 이중적인 것 아닌가???
3
무능력한 관료들이 과잉진압한 것은 사실인데...
그때가 지금처럼 정상적인 민주체제였는지 생각해 보라니까. 왜 오늘날, 현재의 잣대고 재단하려 들지?
처음부터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의 사회하고,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다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사회를 동일하게 재단하려 하지? 그리고, 그런 외적 요인들은 왜 감안하지 않을까?
그저 말 몇마디와 감정적으로 남의 실수나 잘못을 정죄하면 본인이 엄청 정의롭고, 도덕적인 인간이라도 될것 같나???
아르헨티나 실종인위원회의 1984년 보고서 제목이 "Never Again"이라고 하더구나. 나도 저런 일이 다시는 안 벌어졌으면 해서 그러는거다. 그리고, 그 당시 기준으로도 이승만 정권은 막장이었어 임마. 4.3이나 거창, 국민방위군, 보도연맹같은.
2.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 소양교육이 모자란 모양인데, 정부=국가가 아니란다. 국민은 부패한 정권에 대한 저항권을 갖고 있고. 난 그래서 4.19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대체 저 사고방식으로 노무현은 왜 뻑하면 까는거냐?
1. 빨치산 삼족을 멸해도 빨갱이 친척들이니 양민이 아니라고 씨부릴 기세구만. 할 말이 없다.
아들이 아버지를, 특히 아버지의 모든 것을 존경하고 망부석을 세워야 하는 의무는 없죠.
이승만 국부론을 열심히 미는 어르신들은 당신들이 간 다음에 이승만이 잊혀질까 두려워해서 물적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어 저러는 겁니다. 현대 정회장의 죽음이 이산가족 세대의 끝과 시기를 같이 한 것처럼, 앞으로 얼마 지나면 이승만 국부론은 그 어르신들과 같이 천천히 스러질 겁니다. 역사적 평가는 그때 가서 해도 된다고 봐요. 지금은 좌우 모두 너무 열받아있어서..
다만 학살의 강도나 국가의 책임 등을 고려해보면 당시 정부 쪽이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4.3 당시 정부의 대처를 보면 그렇게 보일 만 합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참 자랑스런 역사이긴 한데, 40~50년대의 정부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대상은 아니죠.